여고괴담
여고괴담 - 영화 포스터.
이 영화는 1998년에 개봉돼서 27년이 지난 지금에는 고전이 된 공포영화다.
죽란여고 3학년인 임지오(김규리 분)는 성격이 좀 엉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두운 내면을 지니고 있는 소녀로서 의존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에 여성스러운 윤재이(최강희 분)와 친근하게 지내며 약한 윤재이를 돌봐주는, 착하고 이타적인 품성을 드러내보이는 캐릭터다. 공부 성적은 그리 신통하지 않아도 체계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림 솜씨는 좋은 아이다.
어느날, 아이들로부터 '늙은 여우'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악평이 자자한 늙은 여선생인 박기숙(이용녀 분)이 교내의 나무에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일이 벌어진다. 타살로도 추정해 볼 수 있는 의문사였다.
1989년에 이 학교에 고3으로 다니다가 올해(1998년), 이 학교에 선생으로 부임한 허은영(이미연 분)은 자신의 선생이었었으며 선배 교사였었던 박기숙의 돌연한 죽음 앞에 제자들에게 혹독하게 대했었던 박기숙을 잊지 못하게 된 큰 사건을 돌이켜 보게 된다.
고3 시절, 허은영(박윤희 분)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었던 진주(최강희 분)는 박기숙의 복장 상태 검사에서 단정하지 못한 복장을 지적 받게 되고 이어서 몸에서 짙은 향 냄새가 나서 급우들 앞에서 박기숙에 의해서 무당의 딸인게 폭로된다. 박기숙은 둘이 계속 친하게 지내면 허은영을 위해서 진주를 퇴학시키겠다는 말까지 한다. 무당의 딸은 정당한 이유도 없이 퇴학을 시켜도 되는 걸까? 진주는 결국 급우들에게 왕따가 되고 허은영은 자신도 똑같은 왕따가 되기 싫어서 진주를 멀리하려고 한다. 그리고 어느날 저녁, 미술실에 진주가 혼자 있을 때 미술실 자물쇠를 잠그고 두꺼비집(나이프 스위치)을 내려버린다. 이 부분은 이 영화에서 인간적으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급우들에게 함께 왕따가 되기 싫은 피해 의식 때문이라면 절교하면 되겠지만 독하게 절교할 수 없어서 그런 행동을 했을 수도 있을까 추론해 봐도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추론이다. 급우들에게 전에는 진주와 친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줘서 똑같은 왕따가 되지 않겠다는 선언을 그런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라면 상당히 비겁한 행동일 뿐이다. 은영은 진주를 어둠 속에 감금해 놓고 나서 진주에게 별일(위험)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지만 진주는 혼자서 어두움 속에 감금돼서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면서 선반 위의 조각들과 조각칼이 떨어지면서 날카로운 조각칼에 찔려 죽게 된다.
한편 박기숙이 담임이었었던 임지오의 학급에는 그녀보다 더 혹독한 담임이 오는데 그는 '미친 개'라는 별명이 있는 오광구(박용수 분)다. 그는 그 학급에서 전교 1등인 박소영(박진희 분)은 부유한 집안의 똑똑한 딸이라서 편애하고 존중해 주지만 학급에서 2등이지만 전교 석차는 25등이라서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김정숙(윤지혜 분)은 공부에 편집적으로 집착하지만 노력에 비해 성적이 저조하다며 모멸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임지오가 미술실에서 그린 박기숙의 죽은 얼굴 그림을 보고 교감 선생이 매우 놀랐다는 말을 듣고 학급에 와서 급우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대노해서 임지오에게 폭언과 폭행을 저지른다. 그에게는 성적도 별로 좋지 않고 엉뚱한 데다가 어두운 그늘이 엿보이며 가벼운 추행에 호응해 주지 않는 성숙한 몸매의 임지오가 가장 밉고 편한 화풀이감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숙직을 하던 오광구가 실종이 되는 일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후에 김정숙이 수업 중에 히스테리를 일으켜서 교과서를 찢어발기다가 선생에게 맞는 일이 일어난다. 그날 괴로운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김정숙은 전에는 절친했었지만 지금은 담임선생이 자꾸 비교를 해서 거리가 멀어진 박소영에게 수업을 마치고 난 후에 허심탄회하게 자기와 대화를 해 보자고 하는데 박소영이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자 매일 수업이 끝나면 자가용으로 박소영을 데려가는 사람이 새엄마이고 친모는 아직도 정신병원에 있냐며 묻다가 분노한 박소영에게 따귀를 맞게 된다. 박소영은 모멸감을 주는 말을 건네고 사라진다.
그러자 김정숙은 절망감에 사로잡혀서 나무에 목을 매달아서 자살하고 만다.
한편 임지오는 9년 전에 진주가 갇혀서 두려움에 떨다가 떨어진 조각칼에 맞아서 죽는 사고가 일어난 폐건물의 구 미술실의 마루 밑에서 실종됐었던 오광구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다.
박소영은 담임 선생의 서로를 비교하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절친했었던 김정숙과 멀어진 후에 생긴 김정숙과의 극적인 갈등 때문에 김정숙이 자살하자 허은영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나쁜 선생들의 생각 없이 내뱉는 말들 때문에 아이들이 큰 상처를 받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왕따를 비롯한 시기와 질투, 갈등 등이 그런 선생들이 조장해서 발생하거나 확대되는 일이 많다고 토로한다. 마치 개구장이 어린이가 장난으로 던진 돌 때문에 죽는 개구리처럼... 그리고 친구를 자살로 몬 자신의 언행에 대해 후회하며 크게 자책다.
허은영은 도서실의 책상 위에서, 교무실에서 없어진 1993년과 1996년의 졸업 앨범을 훑어보고 나서 진주가 1989년에 사고로 죽고 나서 귀신이 되어 계속 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고 또 입학하면서 다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주였었다가 지금은 윤재이가 돼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진주가 나타나서 자신이 찔려 죽었던 조각칼로 그녀를 죽이려고 한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존재감도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자신에게 사랑과 관심을 주며 친구로 다가온 임지오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토로한다. 또 귀신이 돼서라도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는 이유가 처음에는 졸업 앨범을 가지고 싶어서였었지만 지금은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친구가 필요해서라고 토로한다.
이때 허은영처럼 그 앨범 두 권을 보고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임지오가 나타나서 귀신이 된 진주(윤재이)가 나쁜 선생들이 아무리 미워도 그 선생님들을 자꾸 죽이는 게 싫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재이를 계속 사랑하지만 죽은 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라고 간곡하게 부탁한다. 결국 진주(윤재이)는 허은영을 죽이려는 생각을 포기하고 사라지게 되고 이 영화는 끝나게 된다.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에 서 있는 고3생의 이야기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아주 오래 전에 지나가버려 잊혀진 과거일 뿐인 경우가 많지만 그 진부한 과거가 곱씹어 되새겨보면 진국처럼 현실에 투영되는 경우도 있다.
성인이 돼서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 자유니 평등이니 하는 보편적인 개념들은 한낱 공허한 겉치레가 되고 계급사회의 치열한 경쟁만이 치열한 현실로 남고 맞닿는 갈등이 된다.
이 영화는 단순한 킬링 타임용 공포 영화가 아니라 시사하는 바가 많은 문제작이다. 오래 전에 처음 봤을 때에는 분주한 나날 중에 건성으로 봐서 줄거리도 상세히 파악하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두 번 이상 유심히 보면서 그 맛을 우려내서 보게 됐다.
급우들 간의 관계, 선생과 학생의 관계 등에서 학교란 일반사회의 축소판이고 더 단순하면서도 치밀하고 야만적인 고리 속에서 일반사회의 메카니즘에 접근하게 만드는 곳이다.
선생들이 학생들의 관계를 인간적으로 중재하고 조정하는 순기능을 하지 않고 오히려 일반사회의 역기능들을 세뇌하고 학습시켜서 사회의 문제점들을 개선하고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그 기성세대들의 진부하고 퇴보적인 가치관을 여과 없이 투영시키고 무비판적으로 수용시키는 역기능의 촉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폭행과 폭언, 추행을 자지르는 나쁜 선생들은 하루빨리 교단에서 물러나고 자애롭고 순수한 교육열이 강하며 긍정적인 교사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존경스러운 스승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결국 이 영화는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선생들과 기성세대의 문제점을 설파하고 진단하는 이야기다. 선생들과 기성세대의 고질적인 질환을 학생들에게 감염시켜서 그들을 속화하고 도덕적으로 타락시키는 한 이 사회의 진보와 긍정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영화는 가볍게 보기 쉬운 소재를 결코 가볍지 않고 무거운 소재로 다뤄서 한국 영화사에 오래 남을 고전을 만들어 놓았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만 19세에서 20대지만 연기력도 발군이었고 배우들 자신이 얼마 전에 여고생들이었기 때문에 공감대도 높고 호소력도 큰 영화를 만들어 놓았다.
이 영화에 제시된 문제들은 아직도 학원에서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일들이다. 이런 일들을 교단에서는 없는 일이라고 부정하지만 말고 긍정적으로 학생들과 진지하고 자애스럽게 대화해서 한 건이라도 줄여나가고 종국에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게 하는 게 이상적인 게 아니라 현실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그 방법론을 정책적으로 돈을 들이고 정성을 들여서 제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